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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1592 이순신 전략의 기술

바다를 지킨 영웅들 이야기

1586년 전국시대의 인물로 대마도 도주 소 요시시게(宗義調)의 가신 조선에서의 기록된 타치바나 야스히로(橘康廣)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조선에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 로 파견되어 일본의 전국시대 통일된 축하사절단 즉 조선 통신사를 요구하려 조선 땅을 밟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마도 도주에게 목숨을 걸고 1년 이내에 조선이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고 조공을 받치게 하라며 명령하였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 명령에 고민하던 소 요시시게의 절충안은 당시 조선이 통신사를 일본에 보내 히데요시의 마음을 적절히 달래보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방법이 양국에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안이었고 히데요시에게서 목숨을 부지하고 나아가 조선과의 교역에서도 차질이 없을 거란 해결책이었다. 부산에 도착하..
1586년 전국시대의 인물로 대마도 도주 소 요시시게(宗義調)의 가신 조선에서의 기록된 타치바나 야스히로(橘康廣)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조선에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 로 파견되어 일본의 전국시대 통일된 축하사절단 즉 조선 통신사를 요구하려 조선 땅을 밟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마도 도주에게 목숨을 걸고 1년 이내에 조선이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고 조공을 받치게 하라며 명령하였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 명령에 고민하던 소 요시시게의 절충안은 당시 조선이 통신사를 일본에 보내 히데요시의 마음을 적절히 달래보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방법이 양국에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안이었고 히데요시에게서 목숨을 부지하고 나아가 조선과의 교역에서도 차질이 없을 거란 해결책이었다.

부산에 도착하여 한성까지 사신의 자격으로 올라오는 타치바나 야스히로는 동래 밀양을 지나 문경새재를 넘어오는 일본 사신에 대해 조선은 관, 역마다 반드시 가장 좋은 방에 거처하도록 하였는데 사신단 일행들의 행동이 거만하기가 하늘을 찌르고 보통 때의 일본 사신과 아주 달라 보여 사람들이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상주 목사 송응형(宋應泂)이 베푼 연회에서 기생의 가무가 시작되자 송응형에게 자신은 전쟁 속에 살면서 수염과 머리털이 희어졌는데 당신은 기생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지냈는데도 머리털이 희게 된 이유가 뭐냐고 비꼬기 일쑤였다.
안동에서는 백성들을 동원해 창을 잡고 길가에 늘어선 것을 보자 너희들이 가진 창의 자루가 너무 짧다며 비아냥거렸고 한양에서 예조 판서가 연 연회장에 후추를 흩어놓자 기생과 악공들이 서로 다투어 줍는 소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보더니 너희 나라는 곧 망하겠구나! 기강이 이렇듯 허물어져서 망하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며 깎아내리기도 부지기수(不知其數)였다.
1592년 4월 조선은 참혹한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을 겪으며 일본은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명분 삼아 조선을 무참히 짓밟았고 19~20세기에 들어서는 한반도에 외교적인 침탈과 강제병합으로 제국주의 지배권을 일삼았다. 그들의 만행은 멈추지 않고 후대를 걸치며 역사를 왜곡시켰고 또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잘못된 역사서에 고증(考證)과 검증(檢證)도 없는 후대 학자들의 난무한 가르침은 또 하나의 역사적 물타기에 휩쓸려 우리 역사를 배우는 우리들 스스로가 좌우로 편향되고 극우와 극좌로 나뉘며 친중과 친일파들의 생각이 접목된 책들 중 올바른 책을 색출해 찾아서 공부해야 하는 것 또한 낯설지 않은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역사연구소의 노력은 역사 바로잡기 운동으로 잘못된 정보들을 수정하고는 있다지만 대한민국은 역사서의 집필 경험 부족과 전쟁 중 사라진 기록들을 보강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된다. 또한 습득한 왜곡된 역사정보는 이미 진실로 둔갑되어 잘못된 기록으로 머릿속에 박혀있고 검증된 새로운 내용을 다시 배울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니 시험을 치르고 성적 반영이 필요 없는 다 자란 성인들에게 잘못된 역사 가르침은 한 사람의 일대기를 망쳐 놓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명량(울돌목) 전투에서 승리를 염원하듯 부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서 돌며 외쳤다던 강강술래(强羌水越來)의 기원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강강수월래”라 읽지 말고 한자에 쓰임의 경우라 이해하고서 “강강술래”라 쓰고 읽는 것이 바른 표기이다. 또한 명량 전투 중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를 부르며 승리를 기원하고 응원했다던 기록도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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